청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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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은 의성군(義城郡)출생으로 대구상업학교를 작년에 마친 유일복(柳一馥)이라는 사람이다. 학교를 마치자 대구은행 안동지점 계산과에 근무하게 되어 오늘까지 계속해 온 것이다.

그는 그 주막집에서 집으로 향하여 돌아오려다가 또다시 영호루에 올라갔다. 고개를 돌리면 이름만 가진 영가(永嘉) 구읍의 쇠잔한 자취가 한가히 족재(簇在)하고 내다보면 자기의 그리운 고향으로 통한 주름살 같은 넓은 길이 낙동강의 허리를 잘라 남으로 통하였다.

그윽한 감구의 회포가 그의 마음을 수연하게 물들이는 동시에 아까 본 그 처녀의 달콤한 웃음이 애연한 인상을 박아 준 듯하다. 아무것도 없는 자기 주위가 무엇이 있어 못 살게 구는 듯하고 가득 찼던 자기 마음이 이지러진 반달같이 한귀퉁이가 비었다가 또다시 동그란 보름달처럼 가득 찼다 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 한귀퉁이가 비는 듯할 때에는 뜻 모르는 눈물이 흐르려 하고 그의 가슴이 찰 때에는 넘쳐 흐르는 기쁨이 그를 몹시도 즐거웁게 하였다.

그가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에는 끝없이 퍼진 하늘이 자기의 모든 장래를 말하는 것 같이 길어 보였으며, 그가 고개를 숙여 땅을 내려다볼 때에는 발 밑에 살살 기어다니는 개미보다 저 자신이 별로 커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오늘에 비로소 그 전에 맛보지 못하던 비애를 맛보았으며 예전에 당해 보지 못하던 기쁨을 당하였다.

그는 웬일인지 자기의 몸뚱이를 돌고 또 도는 뜨거운 피가 약동하는 그대로 자기의 육체의 모든 관능을 모래 사장에 비비고 싶도록 발휘하여 보고도 싶고, 촉루(髑髏)의 곰팡내 흐르는 암굴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눈 딱 감아 버리고 요절한 정(精)의 육향(肉香)에 취하여 그대로 사라지고도 싶었다.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혼자 군소리를 하기는 십여 차나 하였으나 발에다 송진을 이겨 붙이지도 않았을 것이요 몸에다 동아줄을 얽어 놓지도 않았으나 초가 삼 간 작은 집, 보이지 않는 그 방 안에 혼자 앉아 바늘을 옮기는 그 처녀의 흔적 없이 잡아 낚는 이성(異性)의 매력이 그를 잡아 놓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또다시 영호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도 다시 한번 그 집 뒤를 일부러 돌았다. 행여나 그 처녀가 다시 한번 눈에 띄었으면! 다시 한번 나를 바라나 보았으면!

그러나 그 처녀의 숨소리나마 들리지 않았다. 다만 괴괴 정적한 마을 집에 저녁 연기가 자욱할 뿐이었다.

그는 가기 싫은 다리를 힘없이 끌어 서문(西門) 밖 법상동(法尙洞) 자기 여관을 찾아들어온다.

한 걸음 떼어 놓으니 한 걸음이 멀어지고 두 걸음 떼어 놓으니 두 발자국 떠나온다. 뒤를 돌아다보나 살금살금 기어오는 저녁 그늘이 벌써 그 집을 싸돌아 보이지 않으며 실모래 깔린 길이 그리로 연했으나 자기 맘 전해 줄 것은 하나도 없다.

그가 자기 은행 옆에 왔을 때였다. 누구인지,

『어데 가쇼?』

하는 이가 있었다. 일복은 다만 망연히 그를 바라보다가,

『네, 집에 갑니다』 하였다.

『어데 갔다 오십니까?』

『영호루에 바람 좀 쏘이러 갔다 옵니다.』

『혼자요?』

『네, 혼자요.』

『그런데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시지요.』

『참 간다 간다 하고 못 가 뵈어서 죄송합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한번 놀러 오십쇼.』

『네, 이따 저녁 후에 가겠읍니다.』

『그러세요. 그러면 기다리지요.』

그는 삼십이 가까운 그 고을 보통학교 교원인 이동진(李東眞)이었다.

일복은 자기 사관(舍館)에 돌아와 남폿불을 켜 놓고 저녁 예배를 보러 가리라 하고 성경과 찬송가를 찾아 놓고 저녁상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남폿불이 때없이 팔락팔락할 때에 그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것도 그 처녀이었으며 귀쪽 귀퉁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춤추는 듯하는 것도 그 처녀의 환영이었다. 그가 그 옆의 책을 집어 글을 볼 때 그 글자와 글자를 쫓아 내려가는 것도 그 처녀의 어여쁜 자태이었으며, 그가 편지를 쓰려고 붓을 들어 한 줄 두 줄 써 내려가는 것도 그 처녀의 그림자뿐이었다.

그가 저녁을 먹을 때였다. 편지 한 장을 주인 노파가 갖다 준다. 그것은 자기의 친구에게서 온 것이었다.

사랑하는 유군!

오래도록 군의 음신(音信)을 얻어듣지 못하여 나의 외로운 생애가 더욱 적막하다. 나는 웬일인지 아직 나어린 군에게 이 편지가 쓰고 싶어 못 견딜 만치 쓰고 싶었다. 그래서 종작이 없고 두찬(杜撰)의 흠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쓰고 싶어 쓰는 것이니까 거기에 진실이 있을 줄은 믿는 바이다.

군은 이 세속에 무엇이라 부르짖는 수많은 대명사의 껍질을 씀보다도 먼저 사람이 되기를 나는 바란다. 예술가가 됨보다도 학자가 됨보다도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인생이 최고 이상을 향하여 부단의 노력을 하고 있다 하면 그 최고 이상이라 하는 것은 참사람일 것이다.

그러면 그 참사람이 되려면! 되지는 못하더라도 되려고 노력이라도 하려면 거기에는 그 무슨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힘을 창조하는 그 무슨 신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유군이여 나는 달구다 ! 내버린 무쇳덩이다. 나는 참쇠가 못 된다. 참으로 쇠의 사명을 완전히 하는 참쇠다운 쇠가 되려면 그것을 불에 달구어 메로 때려야 할 것이다. 장도리 쇠메가 재아무리 많을지라도 그 쇠를 완전히 연단(鍊鍛)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 사람을 아무리 이성적으로 교육하고 훈어(訓御)하고 지도(指導)할지라도 가슴속에서 활활 붙는 사랑의 불길로 녹을 만치 달궈 내지 않으면 참사람이 못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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